무한대란
무한은 고정된 정해진 것이 아닌 변하는 상태이다.
1도 무한대로 가는 상태이다.
2도 무한대로 가는 상태이다.
3도 무한대로 가는 상태이다.
하지만 1도 2도 3도 무한대는 아니다.
1인가 싶어서 보면 어느 순간 1이 아닌 2가 되어 있다.
무한대와 오병이어
무한대를 생각하면
성경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예수님에게 모여들어
배고파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주신 예수님
다섯개의 빵과 물고기 두마리가 있는 바구니에서
줄지어 오는 사람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꺼내서 나눠주는데
분명 5개와 2개였는데 어느 순간 보면 6개와 3개이다.
분명 6개와 3개였는데 어느 순간 보면 7개와 4개이다.
빵과 물고기가 무한히 담겨 있는 바구니가 된다.
양식이 5천명 분량으로 무한히 커진다.
이 무한은 5천명이 배불러하고
음식이 12개의 큰 푸대에 담길만큼 남았을때 멈춘다.
무한하지만 상황과 시점에서는 어떤 유한한 상태로 보인다.
그 멈춘 시점은 왜 5천명 분량에서가 아니라
아까울 만큼 남았을 때일까?
여기서 사람의 욕심과 하나님의 사랑
두가지를 모두 찾아볼 수 있다.
배고팠던 사람들은
나는 더 먹을 수 있으니까
더 달라고 계속 받아갔을거다.
남길 것을 알지만
달라고 요청하는 손길을 무시하지 않고
허용해준 사랑
그 남은 광주리의 음식들이 버려졌는지
더 배고파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됐는지
잘 보관되어 나중에 잘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남은 음식들을 보며
아, 내가 욕심을 부렸구나 하고
회개한 한 사람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오병이어와 만나
오병이어는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주신 기적을 떠오르게 한다.
이집트에서 탈출하고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에서
배고파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끝없이 먹을 수 있는 만나가 새벽마다 주어진다.
하지만 만나는 아무리 많이 담아놓아도
아침이 지나면 사라진다.
욕심을 부릴것을 알기에
그리고 욕심으로 만나가 보관되면
많이 보관한 사람과 적게 보유한 사람간의 갈등
이러한 모습을 알기에
아침이 되면 증발하도록 계획 되어 있는 만나
욕심이 생기면 감사가 없어지고
감사가 없어지면 삶이 불행해진다.
무한한 영생의 삶을 사는
천국에서 살아도 감사가 없으면 그 곳은 지옥이 된다.
무한대를 생각하면서
오병이어와 만나
그리고 욕심과 감사를 떠오르게 된다.